[영어 마인드셋] 카페 메뉴는 왜 다 영어로 쓰여 있을까?

스타벅스에 열심히 돈 쓰던 시절(지금은 웬만하면 안 가지만)에도 커피 주문은 영 머리가 아픈 일이었는데, 요즘은 영어 메뉴를 “인테리어”의 일부로 쓰는 분위기인 것 같다.

오늘은 약속 때문에 어디 한국에 아시아 체인을 최초로 냈다고 하는 미국 프렌차이즈 카페에 왔는데, 여기도 메뉴가 영어로 쓰여 있다. 코르타도를 시키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나서 cortado를 보고 더듬더듬 코르…타도? 읽으면서 주문했다. 그래서인지 막상 받은 커피 맛도 썩 맘에 차지 않는다.

요즘처럼 미국 문화 같은 게 순전한 환상으로 작용할 수 없게 이미 다 개방된 상태에서 이런 게으른 마케팅은 영 촌스럽게 느껴진다. 커피도, 분위기도, 음악도. 커피가 맛있으면 그래도 용서(?)가 되는데 딱 스타벅스 커피 맛이다. 20년 전쯤 스타벅스라면 신선한 문화 충격 정도는 안겨 줬겠지만, 요즘 한국처럼 커피 문화가 발달해서 맛있는 커피 마시기 쉬운 곳에서 일부러 찾아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수고를 하라고 한다면 노 땡큐를 외치고 싶다.

나는 커피를 좋아해서 정식으로 카페 직원으로 입사해 일해 보기도 했고(교육을 일주일이나 받았는데 정작 매장에서 매니저와 잘 맞지 않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웬만한 커피 메뉴는 대강 잘 아는 편이다. 맛있는 커피를 직접 만드는 솜씨는 없어도 이론적으로 어떻게 하면 대강 맛있는 커피가 되는지는 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영어 원어민처럼 영어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강 잘 알아듣고 심지어 영어로 돈을 버는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커피와 영어 취향(?)이 생기고, 이들을 별거 아닌 일로 생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잘 알지 못하더라도 커피도 영어도 별거 아닌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놈의 스타벅스에 가서 영어 메뉴판을 보고도 쫄지 않고 직원에게 원하는 메뉴를 한국어로 주문했으면 좋겠고(설탕 안 든 블랙 커피라든지 우유 든 커피라든지, 아무렇게나 내가 아는 방식으로), 영어를 몰라도 왠지 모를 의무감에 영어 수업을 등록하고 괴롭게 영어를 배우거나 아까운 시간을 영어에 쏟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야 진짜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됐을 때, 진짜 영어로 뭔가 해 보고 싶어졌을 때, 재미있게 나만의 속도로 해당 분야를 익혀나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