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 영어 말하기에서 필요한 두 개의 축, “유창성”과 “정확성”

이번 주에 다큐 세 편 정도 납품해야 하는 일정이라서, 지금 한참 앉아 있다가 잠깐 일어나서 쉴 겸 틈틈이 포스트를 작성해 본다.
(참고로 영상/산업번역에서 최종 작업 결과물을 의뢰처에 넘길 때는 “납품(한다)”이라는 용어를 쓴다. 영어로는 deliver(y), 배달로 뭐 시켜먹을 때 쓰는 “딜리버리”의 어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최근에 내게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는데, 이 블로그를 만들고 영작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면서 문법이나 단어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쓰게 되었다. 정확하든 말든 상대가 알아서 알아듣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게 바로 영어에서의 “유창성”이다. 그리고 이 유창성을 가장 방해하는 게 “정확성”을 지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쭈뼛쭈뼛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우리의 영어 회화 실력은 보통 유창성과 정확성의 주거니 받거니를 통해 향상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실 모순이 좀 있다. 아무렇게나 말하면서 유창성 좀 키우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도가 떨어지고, 반대로 정확성 좀 높이려고 하면 실수할까 봐 멈칫하며 말수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유창성이 떨어진다.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이 두 가지 속성을 내가 “축”에 비유한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다. 서로가 서로를 보조할 수 없지만 대신 각자 꼿꼿하게 튼튼하게 꾸준하게 버티면 그때부터 내 영어 실력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한다. 소프트웨어공학에선 이렇게 잘 짜인 구조를 (모듈간) 각자 응집도(cohesion—자기 역할에 충실)가 높으면서, 결합도(Coupling—서로 의존하는 정도)가 낮다고 표현한다. (비싸게 학비 내고 학교 다니면서 배운 지식 활용하기)

요즘 로마 유물 다큐 작업 중이라서, 고대 로마 신전 / 사진 풀처: 스미소니언 매거진

이론적으로는 뭔지 알겠는데, 그럼 영어를 잘하려면 대체 유창성과 정확성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나는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늘 유창성이 고민이었다. 속으로 생각이 너무 많고 말을 하려고 하면 온 몸이 굳고 입술부터 바들바들 떨렸다. 그래서 보통 영어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떻게 해서 내가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편이었는데(이게 나한테는 성취의 경험이니까), 최근에 내가 참여 중인 책 모임에서 본인은 “원래 아무렇게나 얘기는 잘 나와서 다른 게 문제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두 사람 중 내가 어느 상태에 더 가까운지를 생각해 보고, 더 어려운 쪽을 먼저 공략해 보길 추천한다.

1) 틀리든 말든 아무 얘기나 할 수 있다—유창성에 강한 유형
이미 말이 잘 나온다면 앞으로는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직접 의식하고 인식하면서 좀 더 정확도를 높여 보면 실력이 훨씬 더 일취월장할 수 있다. 일상 대화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기 어렵다면, 생각날 때마다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길 추천한다. 이미 유창성이 좋은 분들은 미세한 한끗 차이로 학습 단계를 레벨업 시킬 수 있는데 이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다.

2) 틀릴까 봐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말 뱉기가 어렵고 떨린다—정확성이 강하지만 이게 영 티가 나지 않는 유형
나도 이 유형에 가까운데, 잘하고 싶어서 공부를 오래 했지만, 결국 이걸 말로든 글로든 표현하고 소통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어느 수준으로 익히고 연습했는지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한국어 원어민들이 뱉는 말을 잘 들어 보면 되게 틀린 말이 많은데(대표적인 예시: 하던지 말던지) 그래도 다들 별 어려움 없이 한국어를 쓴다. 원어민의 언어는 원래 엉망진창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틀리는 건 별일 아니고 우리는 지적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담감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나처럼 영어 관련 블로그를 하면서 영작 연습을 아무렇게나 하고 “남이 볼 수 있게” 공개로 발행하는 방법이다(강추). 두어 달 만에 유창성이 굉장히 늘었고(특이점: 런던에서 1년 살면서도 전혀 늘지 않았음) 무엇보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 2번 유형의 장점은, 이미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한번 입이 뚫리고 유창성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영어 실력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좋은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긁지 않고 갖고 있던 복권을 긁어서 당첨되는 수준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그렇다면 이도 저도 아닌 분들은 어떻게 하면 될까? 유창성과 정확성이 제법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 그냥 그때그때 내게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면 된다. 말이나 글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내가 지금 너무 의식하느라 안 나오나 보다” 하고 유창성에 집중하고, 말글이 술술 나올 때는 정확성에 집중해서 품질을 올리려는 시도를 해 보면 좋겠지? 이런 분들의 강점은 어느 쪽도 “너무” 어렵지는 않아서 적당한 노력과 시도로 성취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살아가는 한 계속해서 가다듬어야 하는 부분이라서 앞으로도 종종 더 살을 붙여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시 일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