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 다 큰 성인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영어 원서 어떻게 고를까?

영어 원서를 읽기로 결심했다면 그 전에 한번 이 질문을 던져 보면 좋다. “영어책은 됐고, 한국어책을 최근에 읽은 게 언제였더라?”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영어책도 결국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독서를 딱히 하지도 않았고, 책에 관심도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내 독서 취향을 탐색해야 하므로 시간과 노력이 조금 더 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독서 그룹을 크게 셋 정도로 나눠서 책 추천을 해 보겠다.

1. 책을 좋아하지도, 딱히 관심이 있지도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다룬 책을 찾아 읽는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내가 재밌게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내가 잘 아는 분야의 비문학 서적을 찾아본다. 이러면 내게 이미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하얀 것은 배경이고 까만 것은 글씨구나…하는 단계를 금세 벗어날 수 있다.

영어책을 읽을 때 필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신감이다. 영어책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만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영어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읽는 거다.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이미 잘 아는 취미나 업무 분야 지식을 영어로 확장시킨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영어 단어 뜻을 잘 몰라도 내가 잘 아는 분야는 감만 잡으면 이해도가 쑥쑥 오른다.

그리고 필요한 다른 하나는 재미 혹은 관심이다.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을 읽지 말고, 진짜 궁금한 분야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심지어 AO3라는 팬픽션 연재 사이트에서 영문 팬픽을 읽으며 영어 실력을 쌓은 사례도 적지 않다. 아니면 마음에 드는 주제나 그림체를 골라 영어 웹툰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추천 예시1. My Abandonment by Peter Rock

〈흔적없는 삶〉이라는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는데, 내용이 적당히 겹치면서도 결말은 아예 달라서 충격적인 전개에 후반부를 밤새 읽은 기억이 난다. 영어책이어도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적이면 집중력이 한층 올라간다(?). 책은 책대로 좋고, 영화는 영화대로 각색을 잘한 작품이라 둘 다 추천한다.

추천 예시2. 라인 웹툰
https://m.webtoons.com/en/

WEBTOON

다음카카오 블로그에 네이버 서비스를 소개해도 괜찮나? 싶지만, 아무튼 여기서 마음에 드는 영어 웹툰을 읽어 보면 영어와 한결 친해질 수 있다.

https://m.webtoons.com/en/slice-of-life/hello-world/list?title_no=827

Hello World!

나는 솔직히 웹툰을 즐겨보진 않아서 소개할 만한 게 거의 없는데, 한창 영국에 다시 갈 마음을 다지면서 이 웹툰을 봤었다(작가가 영국에 산다). 작품 수가 너무 많아서 아마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2. 보편 다수가 좋아하는 베스트셀러파
딱히 취향이랄 게 없고 독서에서 모험하고 싶지 않아서 유명한 책만 읽는 독자라면, 국내에 잘 팔린 번역서 원서를 찾아보길 추천한다. 이 카테고리는 자기계발서 비율이 압도적이다.

추천 예시 1.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ck by Mark Manson

국내에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초베스트셀러다. 원제를 날것의 느낌을 살려 번역하자면 “남일에 ㅈ도 신경 안 쓰고 사는 법”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저자가 직접 들려 주는 “책 내용 요약” 영상도 함께 보면 리스닝도 챙길 수 있다.

추천 예시 2. Ultralearning by Scott Young

솔직히 이 책은 국내 베스트셀러는 아니기도 하고, 나도 번역서만 읽었는데, 대신 저자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를 구독 중이다. 뉴스레터 구독하면 무료로 보내 주는 전자책이 있는데 내용이 알차서 왠지 모르게 저자를 향한 신뢰가 쌓였다. 소셜미디어에서 1년 만에 MIT 공대 수업을 이수한 콘텐츠로 바이럴을 탔는데(참고로 영어로는 이걸 go viral이라고 말한다) 독학계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인물이다. 나처럼 자기계발 분야에 심취해 있는 분들이라면 영어를 시작하면 정말 신세계가 열리니 적극 추천한다. 유튜브에도 볼 만한 영상이 정말 많다.
아, 국내 베스트셀러 번역서 저자가 위 책의 저자 스콧 영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책이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얘기 내가 했던가?

3. 책은 알아서 읽을 거고 영어만 공부하면 돼
이미 자신만의 독서 취향이 확고한 분들이라면 사실 내 추천이 필요없다. 이미 읽은 책의 원서를 읽어도 좋고, 아니면 한국어 원서의 영어 번역서를 읽는 것도 좋고, 아무튼 한번 길만 내 주면 알아서 잘 읽을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내가 맘에 드는 책”이다. 어려워도 어찌저찌 읽고, 재미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읽을 기분이 나지 않는 책은 절대 못 읽는 유형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추천 도서 대신 그냥 내가 내 멋에 취해 읽은 책을 소개해 볼까 한다.

내 멋 예시 1. Why Fish Don’t Exist by Lulu Miller

이 책은 아직 사실 번역서만 읽었는데, 국내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신흥 베스트셀러 과학서다. 아직 상반기가 채 끝나지 않기는 했지만, 올해 읽은 재밌는 책 베스트 3위에는 들 것 같은 작품이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읽어야 하는 책으로 소문나서 소개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한다. 내 멋 예시 2. Kim Jiyoung, Born 1982 by Cho Namjoo

이 책은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 읽었는데, 영국에서 딱 한국 돌아올 즈음에 영문판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중에 아마존UK에서 샀다. 그게 2020년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 안으로 읽으려고 한다. 사두면 언젠가는 읽는다(?).

내 멋 예시 3. Klara and the Sun by Kazuo Ishiguro

이건 작년에 찔찔 울면서 번역서로 읽은 책인데 번역문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한 번쯤 영어로도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다. 일본계 영국인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낸 첫 작품이라 많이들 기대하며 샀는데 어쩐지 서점 사이트에서 평이 아주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나는 5점 만점을 줬다.

어쩌다 보니 내 멋 추천 세 권은 전부 한국어책만 읽고 아직 영어책으로는 읽기 전인 작품들이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하나씩 야금야금 읽으면 또 다 읽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