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 영어로 말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드라마에서 뭔가 해당 인물의 유능함을 돋보이게 하고 싶을 때 이따금 “바이어”와 영어로 통화하는 장면을 잘 집어넣는다. 요즘은 워낙 영어를 잘하는 배우들도 많고, 심지어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배워서 대사를 소화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옛날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멋진 표정으로 영어 대사를 뱉는 장면은 이제 와 보면 좀 웃길 때가 많다. 배우의 발음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라는 게 작가 예술이라는 말도 있듯이 영어 대사도 보통 작가가 쓸 텐데 그 대사의 내용이 왠지 뭔가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 트렌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일상은 온통 연애에 맞춰져 있고, 그런 주인공의 곁에는 자신의 연애를 틈틈이 궁금해하는 주인공의 절친이 꼭 있다. 그리고 드라마 속 영어 대사는 어쩐지 이 절친을 닮았다. 존재의 의의가 그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영어로 하는 소통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물론 내 삶이 드라마틱하다면 내 영어도 제법 드라마틱해지겠지만, 내 일상이 밋밋하다면 내가 뱉게 될 말과 하게 될 생각이 한국어에서 영어로 옮겨간다고 해도 비슷하게 밋밋한 결을 유지할 확률이 높다. 결국에는 영어로 말하는 나도 “나”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내 삶에 진짜 소통의 수단으로 개입하려면, 필요한 것은 “충분한 공부”와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아니다. 대신 그냥 뱉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된다. 한국어로 대화할 때와 마찬가지로 영어로 하는 소통에서도 우리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의 “티키타카”가 필요하다. 이걸 경험하기 전에는 막연히 어렵지만, 막상 해 보면 결국 영어 말하기는 영어 말하기를 통해서만 는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럼 당장 Hi, Hello, 이후로 더 이어나갈 말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대화 상대를 찾거나 영어 원어민 선생님을 구해야 하는 걸까? 이 부분은 학습자마자 의견이 좀 갈리겠지만, 나는 우선 “혼잣말”이라는 좋은 수단을 활용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어 소통과 마찬가지로 영어 소통에서도 보통 상대는 내가 원하는 말만 해 주지 않는데, 그래서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 이유에는 내 부족한 영어 실력 못지 않게 “나와 관심사가 다른 대화 상대”라는 요인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영어 자신감이 낮을수록 후자의 상황에서도 무조건 내 영어 실력만을 탓하며 영어 학습을 향한 흥미가 지하로 깊이 하락하게 될 위험이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청인이라면) 내가 하는 말이 다시 내 귓속으로 들어와 내가 듣게 되어 있다. 내가 쓰는 글을 내가 다시 읽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그래서 낯선 대화 상대 대신 우선 가장 친숙한 나 자신과 하는 대화부터 시작해 보길 추천한다(이 과정을 보통 “혼잣말”이라고들 한다). 나와 대화하면 내가 원하는 질문에 내가 원하는 답을 하며 비교적 편안하게 말이 이어질 수 있다. 이때는 틀릴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무조건 뱉으며 랠리(?)가 최대한 길게 이어지도록 말을 이어나가 보자. 이렇게 대화(?)가 제법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억지로 결심하지 않더라도 다른 대화 상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확률이 높다.

여기에 하나 더,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인데, 최근 부쩍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팟캐스트도 많이 듣고 드라마도 꾸준히 보면서 영어 오디오 노출 시간이 늘은 영향인지 몰라도, 꿈에서 계속 영어로 말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면 실제로는 앞서 얘기한 혼잣말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기는 해도 머릿속 지각으로는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내 무의식이 만들어내서 실제로는 나와 비슷한 영어 수준을 갖췄지만, 꿈속에서는 내가 왠지 타인으로 의식하게 되는 상대)가 내게 영어로 말을 걸고 거기에 답하며 현실과 똑같이 대화를 연습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앞으로도 꿈에서 계속 영어로 말하는 상황이 펼쳐지도록 영어 오디오 노출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자고 목표를 잡았다.

영어 말하기에 필요한 준비물을 딱 하나 꼽자면, 나는 “준비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