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 영작 제대로 하는 법(feat. “기분이 안 좋아”)

급한 마감 핑계로 며칠 미루다가 오늘부터 정신 차리고 다시 글을 올려 보려고 한다. 산책도 하고, 채소도 챙겨먹고, 책도 읽고, 마감도 늦지 말아야지. 멍하니 누워 있는 시간을 없애면 가능할 것도 같다. 얼른 마감 다 끝내고 멍하니 누워 있고 싶구만….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문장을 영작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그리고 놀랍게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의 영문 버전은 최소 3가지쯤 된다. 내가 생각하는 영작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문장 구조보다는 “화자의 의도”다. ’이 말을 왜 하는가?’. 이때 한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영작도 잘할 수 있다. 애초에 이건 “기분이 안 좋다”라는 한국어 문장에서 출발하는 번역이니까.

한국어 문화권에서 우리가 “기분이 안 좋다”고 말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이 3가지쯤으로 추릴 수 있다.

1. 기분 나빠. / 기분 별로야.
I’m upset. / I’m in a bad mood.
사실 여기서 upset은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아우르는 말이라서 오히려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길 때 의미가 납작해지는 경향이 있다.

2. 몸 상태가 안 좋아
I’m not feeling well.
보통 드라마에서 일명 ‘call in sick(근무 당일 전화로 연락해 통보하는 병가)’ 낼 때 잘 나오는 말이다. 위급한 병은 아니지만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띵하고… 뭐 이런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아픈 증상을 설명할 때 쓴다. 특히 그중에서도 “왠지 토할 것 같은 상태”를 대표하는 말이다.

3. 저런, 안됐다.
I feel bad.
“기분 안 좋아”를 거의 바로 직역하면 이 문장이 되는데, 사실은 한국어 용례와는 가장 떨어져 있는 말이다. 이 문장은 보통 나보다는 남의 상황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느낌으로 하는 말이다. “걔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니 마음이 안 좋네….” 이런 느낌으로 쓰는 말이다.

지금은 잠시 중단됐지만, 예전에 송은이, 장항준의 〈씨네마운틴〉이라는 팟캐스트를 즐겨 듣곤 했는데, 거기서 장항준 씨가 종종 이런 요지의 말을 하곤 했다. “왜 영어는 그렇게 어렵게 말하는 건가요? ‘나는 밥을 먹는다’면 그냥 I rice eat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정확한 워딩이 아니라서 이건 사실 인용은 아니지만…) 이게 바로 많은 한국인이 간과하는 자신의 한국어 유창성이라고 나는 본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먼저 내 언어 세계를 잘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내가 I rice eat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그냥 내가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어가 편안하며, 상대적으로 영어는 낯설고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두 언어가 정확히 동등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국어도 존중하면서 영어도 잘 배울 수가 있다. 사실 영어인(?)들에게 이 말은 되게 의아하게 들릴 거다. 왜 영어를 한국어 어순에 맞춰서 쓰지 않느냐고 묻는 말이니까.

이 관계를 이해하면 영작이 아주 조금은 더 편안해진다. 영작에 무조건 한국어 등 내가 가장 능숙한 언어를 개입시킬 필요는 없지만(한국어 표현을 굳이 먼저 생각해 보지 않아도, 우리는 영어적 맥락을 통해 I feel bad를 익힐 수 있다. 이렇게 배우려고 다들 “원어민” 타령(?)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한국어 원어민 화자라면 한국어를 통해 이해한 인간의 감정 표현을, 영어 이해에 활용하는 건 분명히 플러스가 될 수 있다.

영작은, 더 나아가 번역은, 단순히 단어 퍼즐을 꿰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라는 예시 문장을 기계적으로 나는/기분이/좋지 않다 이렇게 쪼개서 영작할 수 없다. 대신 1) 먼저, 출발어(한국어)의 의도를 따라가고(이 말을 왜 하는가?) 2) 그다음 그 의도에 따라 이미 존재하는 도착어(영어) 용례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미 내가 잘하고 익숙한 제1언어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영어는 물론이고 우리의 언어 세계 자체가 앞으로 더 쑥쑥 잘 커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