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 단어를 알아도 아리송한 영어 해석 어떻게 할까?

"영어(스피킹) 잘하세요?"

제가 그동안 접해온 이 물음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 유형은 2가지 정도였습니다.

1. 영어 잘 못해요ㅜㅜ(그리고 어쩐지 변명을 늘어놓거나, 주제를 바꾸게 된다)
2. 영어/스피킹 잘하는데, 내가 단어에는 좀 약해.

특히 2번처럼 답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뜸했지만, 해외 여행 자주 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유형이죠. 꼭 유창한 영어를 하지 않더라도 소통의 수단은 다양하니까요.

이렇게 대화 자체에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무덤덤한 성향이 영어(스피킹)을 시작하는 데는 대단히 큰 메리트이긴 합니다. 일단 말을 트려면 이러한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니까요.

하지만 길게 봤을 때는, 결국 단어가 중요합니다.
헉... 위 문장을 쓰자마자 저까지 괜히 지루해져서 창을 닫고 싶어지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단어"는, 영어 어휘가 주어졌을 때 빈칸이 한국어 뜻을 쓰며 실력을 점검하는 그런 단어는 아닙니다. 오히려 뜻을 알아도 실제 용례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일이 왕왕 발생하거든요.

요즘 한창 애플TV에서 절찬리 서비스 중인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The carts took up the better part of the kitchen because they had to keep them inside the house for fear of them getting stolen.
수레는 부엌 내에서도 가장 좋은 목을 차지했다. 애초에 수레를 죄다 무조건 집 안에 두려던 것도 도둑맞을까 봐 무섭기 때문이었다.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고, 혹여 모르는 단어가 있더라도 사전을 찾으면 됩니다.

하지만 위 영어 문장이 의도한 것은 읽히는 그대로의 의미와 아주 약간 다릅니다.

the better part of something은 이대로 해석하면 "더 좋은 부분"이 되지만, 영어권에서 실제로는 "어떤 것의 대부분(the majority, 과반)"을 뜻할 때 이 말을 씁니다. 그래서 위 문장에서 저자가 의도한 바는 사실 "수레가 부엌 공간을 거의 다 차지했다. 애초에 수레를 죄다 무조건 집 안에 두려던 것도 도둑맞을까 봐 무섭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죠.

대체 영어는 왜 이러는 거야?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국어에도 이런 표현들이 찾아보면 되게 많을 거예요. 이건 그냥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역상의 사소한 실수들은 보통 어려운 어휘보다는 이렇게 물 흐르듯이 편안한 문장에서 더 쉽게 발생합니다. 그리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제 경험상 솔직히 이 정도의 실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첫 번째 예시 문장이 근원적인 뜻이나 의도를 해치는 수준의 실수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수를 해도 적당히 좀 봐 줘라" 같은 뜻이 아니라,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잘 작업하는 번역가의 탁월한 세심함에는 무한한 박수를 보내지만, 번역이라는 게 인간이 하는 작업이다 보니 이렇게 지나치는 부분이 전혀 없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느끼거든요.

결론적으로,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영어를 익힐 때 단어는 단순히 사전을 찾고 외우는 단계에서 머물지 말고(이게 먼저긴 합니다. 우리가 찾는 웬만한 단어들은 거의 사전에 다 그 뜻이 나와 있기는 하니까요), 해당 단어나 표현의 용례를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접해야 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doing well." 같은 말도 그냥 해석하면 "잘 하다"지만, 실제 뜻은 "잘 지내다"라는 뜻인데, 그래서 안부를 물을 때 "Hope you're doing well."이라고 건네는 인삿말은 "너 잘 지내고 있지?"라는 말이지, "너 잘 하고 있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건 명확하게 구분되는 의미죠. 하지만, 최근에 보던 드라마에서 이 표현이 "Are you doing well?" 같은 식으로 진짜 말 그대로 "잘 하고 있다"의 뜻으로 쓰인 용례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재밌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신기했어요.


중요한 것은, 영어는 영어 단어와 동시에 탄생하지 않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인간이 사용하던 용례의 경향성 혹은 유형을 정리한 게 나중에야 사전으로 발전한 거라는 점입니다. 저들이 이러이러한 말을 할 때는 보통 저러저러한 뜻이더라. 같은 느낌으로요. 이건 결과적인 정리지, 뜻이 먼저 생겨나고 그런 다음 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이 전후 관계의 핵심을 간파하면 내 영어가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밥 먹었어?"라고 묻는 말이, 실제로는 "did you eat something(너 뭐 좀 먹었니)?" 같은 식으로 번역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아주 많은 경우 "How are you?" 같은 안부 인사로 쓰이며, 그러면서도 가끔, 이를테면 병원 건강검진 접수 창구 같은 곳에서의 상황에서는 진짜로 "식사를 했느냐?"를 묻는 말로도 쓰이니까요. 자연스럽게 한국어 문화를 체득한 경험이 없는 외국인들도 용례를 학습하면서 맥락에 따라 이 말을 "잘 지냈어?" 같은 뜻으로도 해석하고, 또 어떤 맥락에서는 진짜 말 그대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이실직고(?)해야 하는 물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더 풍성한 한국어 경험을 쌓는 것처럼 말입니다.

단어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단어는 스피킹의 핵심이고, 그래서 2번처럼 "내가 스피킹은 잘하는데, 단어는 좀 약해."라는 말은 딱 절반쯤만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