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마인드셋] 냅다 읽다 보면 점점 편해지는 영어 원서 읽는 법

여러분은 혹시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된 책을 읽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학생 때 소프트웨어공학을 배웠는데 번역서로 된 교재가 너무 안 읽혀서 영어로 된 교재로 공부를 시작했던 게 처음으로 영어 책을 접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영어 책을 활용하는 것은 영어를 대단히 잘해야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IT 분야 책은 기술적인 용어만 알면 그 외 단어나 표현은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이기도 하지요. 문제에도 describe it(뫄뫄를 서술해 봐라), solve it(이 문제를 풀어 보거라), 거의 이런 말만 반복적으로 나오거든요. 아, solution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 어휘예요. "해답"이라는 뜻이죠(직접 풀기 전에 해답부터 보는 불량 학생이었던 저).

다만 딱 하나 필요한 게 있습니다. 영어로 된 책을 펼치기도 전에 어려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저는 영어를 딱히 잘하지는 못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를 좋아하기는 했어요. 혹시 저처럼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직 마음을 허락할 수 없다(?)는 분들이 있다면, 이 정도로는 마음을 바꿔 보시면 좋겠어요. 영어 책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만 보는 게 아니다. 영어는 잘하는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 쓰는 거예요. 한번 영어를 생활에서 활용하기 시작하면 이후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계속 쓰게 되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폭과 깊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니까요. 그동안 내 지식이 한국어 문화권 맞춤 내수용이었다면, 앞으로는 전 세계로 무역을 개시하게 된 셈인 거죠. 스마트폰의 기능이 너무 많은 게 "불편해서" 다시 피처폰으로 돌아가는 분들은 잘 없죠.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해지면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이 새로이 열립니다. 영어는 말하자면 스마트폰 같은 거예요. 한번 쓰면 그게 없던 시절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지죠.

그럼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어 책 쉽지 않죠. 또, 쉬운 책은 너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 문학에 속하는 영어권의 영어덜트 장르(일명 YA)는 점점 일반 성인 문학과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YA 장르 책을 즐겨 읽는답니다.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고, 가끔 읽다가 운 적도 있어요(사실 많아요). 우리나라 온라인 서점 서평을 읽다 보면 청소년 문학은 꼭 "애들에게 읽히겠다"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어쩌면 마케팅의 영향인가 싶기도 한데, 영어 책을 읽는 데 가장 큰 장벽이 "영어와 사이가 데면데면하다"는 거라면, 두 번째로 큰 장벽은 "어떤 책은 읽어야 할 나이가 정해져 있다"는 편견인 것 같아요. 출판 마케팅에서 연령을 구체적으로 잡는 이유는, 그냥 해당 연령대를 공략해야 가장 잘 팔릴 것 같다는 의미이지, 작가들이 처음부터 잠재 독자의 연령을 엄격하게 정하고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니에요. 청소년 문학이면 19살까지는 읽을 수 있고, 스무살부터는 읽으면 불법이고 뭐 이런 구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청소년 문학은 좀 더 문장이 간결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친절하죠. 그래서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의 관계가 좀 더 명시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요. 편집 과정에서도 좀 더 이런 부분에 공을 들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가볍게 시작하기에 좋습니다. 분량도 길지 않은 책이 많아서, "책 한 권 끝까지 읽었다!"는 기분 내기에도 좋고 이런 성취감이 쌓이면 다양한 책에 도전할 수 있게 해 주니까요.

게다가 잘 생각해 보면, 한국어 책이라고 매번 술술 읽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 책을 펼치면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그대로 탈출하는 경험을 자주 하거든요. 원래 독서라는 게 훈련하지 않으면 언어에 관계 없이 알아서 잘 되는 활동은 아니에요. 하지만 근력 운동하듯이 자잘하고 꾸준하게 독서 근육을 키워주면 그 성과를 누구보다 내가 먼저 실감하게 되는 것도 독서예요.

그렇다면 왜 굳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냥 영화로 보면 안 될까요? 우선은 더 친숙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먼저 시작하세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편안하고 "한번 영어로 뭘 읽어 볼까?" 하는 동기부여와 의지가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이 생활 습관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어요. 여기에 더해서, 책이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영화가 미술적으로 구현한 장치들을 책은 오로지 말로만 풀어가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를 접하기에 더 좋습니다. 유명한 '해리 포터' 시리즈 1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Mr. and Mrs. Dursley of number four, Privet Drive, were proud to say that they were perfectly normal, thank you very much. (더즐리 부부는 프리벳로 4번지에 살며 자신들이 완전 무결한 정상이라 뻐기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장면을 영화에서는 말로 하지 않고 대신 "보여 줍니다". 그게 바로 영화의 언어니까요. 영화에서 언어적 묘사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만듦새가 조악하다고 느끼게 되죠. 더즐리 부부가 가만히 앉아서 자신들의 성격을 말로만 읊는다면 캐릭터의 특성이 관객들의 머릿속에 잘 들어올까요? 그리고 영화가 표현하는 이런 비언어적 묘사를 우리는 보통 자국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국어 처리기가 외국어(영어) 처리기보다 훨씬 더 빠르고 성능이 좋거든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거의 대사 위주로만 영어가 인식됩니다. 아마 영화로 저 장면을 본다면 저는 '더즐리' 말고는 아무것도 영어로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영어로 된 언어 세계가 어느 정도 발전하기 전까지는, 내게 아주 친숙한 이야기나 영화의 도움을 받아 독서를 시작하면 좋습니다. 어휘를 몰라도 눈치로 맥락을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아, 이게 지금 그 장면 얘기하는 거구나, 이런 세세한 요소들을 언어로 머릿속에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책이 먼저냐 영상이 먼저냐는 사실 대단히 중요하지 않아요. 대단히 중요한 것은, 내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콘텐츠죠. 앞서 말했듯이 "영어로 뭘 좀 보고 익혀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인식의 전환도 물론 필요하고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영어로 뭘 좀 해 보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내게 친숙한 방식으로 하는 게 중요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영어는 잘하는 사람들이 쓰는 게 아닙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쓰는 거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처럼요. 냅다 펼치고 그냥 이해하면 이해하는 대로, 모르겠으면 모르겠는 대로 한 번, 두 번, 세 번, 궁금한 책들을 끝까지 읽어 보는 시도를 해 보세요. 책 내용을 100% 이해해야 하거나, 수업 시간처럼 어떤 시험을 통과해야 "완독"으로 인정 받는 게 아니에요. 그냥 책을 펼치고 찬찬히 읽으면서 그동안 하지 못한 어떤 생각을 하게 되거나, 읽은 책에 대한 어떤 뚜렷한 인상, 기억이 남았다면 그것만으로 아주 훌륭한 "완독"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뭐든 한번 가볍게 시도해 보세요! 요즘은 반즈앤노블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는 단편도 많답니다. 책은,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편하게 떠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제가 처음으로 혼자만의 의지로 완독한 책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해요.

런던 도심에 '페르세포네 서점'이라는 데가 있는데, 옛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서 출판도 하고 매장에서 책도 파는 곳이에요.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모든 표지의 디자인이 똑같고 저렇게 안쪽 디자인만 다른 구성으로 한 게 이곳에서 내는 책의 디자인 테마였어요. 여기서 도로시 위플의 'High Wages'라는 소설책을 샀어요(2018년 12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러고 2020년에 한국 집으로 돌아와서, 그러니까 아마 2년 전 이맘때 쯤 1-2달에 걸쳐서 다 읽은 것 같아요. 1930년대 작품이라서 today에 하이픈을 붙여 to-day로 쓰던 시절에 쓰인 이야기인데, 옷 가게에서 고용 노동 하는 삶을 꿈꾸던 주인공이 마침내 일자리를 얻고 사장 밑에서 가게를 열심히 꾸리지만, 너무 그릇이 큰 인물이었던 탓에 이런 저런 사업적 제안을 해도 사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말을 살짝 귀띔하자면, 결국 주인공은 자기 옷 가게를 차려서 자수성가하게 돼요. 당시에는 꾸역꾸역 읽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느라 내용은 좀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기억을 돌이켜 보니 그때보다 지금 더 필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조만간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이나 여성 작가 작품에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페르세포네 서점에서 낸 책들을 읽어 보시고 언젠가 직접 서점에 방문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되리라 믿습니다.

@Bloomsbury Coffee House (2022년 4월 현재 임시 휴업 중), 20 Tavistock Pl, London WC1H 9RE, United Kingdom

근처에 맛있는 플랫화이트를 파는 카페도 있으니, 앉아서 커피 한잔하면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언젠가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도 현재 일상의 피로와 고단함을 조금은 날려 줄 거예요.